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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름
굴업도(척박한 땅을 일구는 일이 하도 힘이 들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하는'이란 뜻으로 굴업(掘業)이라 부른다고도 하고,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굴업도'라 했다고 하기도 한다.
● 섬의 역사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었던 웅진지구는 '피의 옹진'이라고 불리울 만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후퇴하고 철수하였다. 사곳항에는 옹진반도에서 철수해 온 병력과 민간인들이 뒤엉키어 있었으나 우리 국군의 철수 작전에 따라 다시 인천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 중공군의 개입에 대규모 정규전은 없었으나 옹진 청년 학생들은 6.25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옹진의 자유를 위하여 대공토쟁을 해 나갔는데 그들이 바로 역사에 남을 웅진하도 유격대원들인 것이다. 1951년 1.4후퇴시에는 임시군청을 인천에 소재한 부천군청에 설치하여 20여개 도서의 난민구호 행정을 실시하였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성립 후 휴전선이 생김에 따라 백령도를 비롯한 대청도, 연평도, 소연평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미수복지구가 되었으며 1962년 6월 14일백령면 대청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7월 행정구역의 대대적인 작업으로 부천군에 속해 있던 영종, 북도, 용유, 덕적, 영홍, 대부면이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이는 부천시가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라 서해 도서에 대한 행정이 곤란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백령면과 송림면뿐인 옹진군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인천연해 도서지역을 합하여 관할하게 한 것이다. 1974년 대청 출장소가 대청면, 1983년에 영흥면에 속해있던 자월 출장소를 자월면으로 승격하여 옹진군은 10개면, 3개 출장소, 124개 서해 도서로 팽창하였다.
1975년에는 인천 신홍동에 종합청사를 신축하여 오늘날 옹진 행정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1989년 1월에 영종면과 용유면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고, 1994년 12월 22일 대통령령 제 14434호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대부면이 안산시로 편입 (94.12.26)되었으며 옹진군의 영역은 7개면, 2개장소로 줄어들었다. 또한 법률 제 4802호(94.12.22)에 의하여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로 다시 편입된 옹진군은 그 지역 특성상 수도권의 해상방위 및 경인지역의 수산물 공급처, 해상관광의 휴식공간, 그리고 서해안 개발의 요충지로 앞으로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섬의 특징
덕적면 굴업리를 이루고 있는 이 섬은 덕적도 서남도 13km거리에 있으며 인천항과는 82km가 떨어져 있다. ‘굴업도’는 원래 ‘대굴업’과 ‘소굴업’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섬이었다. 바닷물이 빠지고 드는 시간에 따라 합쳐졌다가 나뉘기를 반복하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높게 쌓인 모래톱이 두 섬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형성되면서 지금처럼 하나의 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반달 모양으로, 낮은 산자락이 해변가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상과 같다. 깨끗한 모래와 나지막한 검은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연출하는 해변가의 풍경은 평화롭다 못해 고요하다. 섬에는 모두 세 곳의 해수욕장이 있지만 모래의 상태, 규모 면에서 마을 쪽에 위치한 해변이 해수욕을 즐기기엔 가장 적합한 편. 개망초나 엉겅퀴 같은 야생초, 이름을 알 수 없는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인 산세도 빼어나다. 그림 같은 해안선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풍경도 대단하지만, 굴업도는 사슴과 흑염소를 야생공원처럼 풀어놓고 방목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 덕분에 섬을 찾는 관광객도 제법 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풍경은 대굴업도 정상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다보이는 먼 바다 위의 바위섬이다. 포크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 뾰족한 바위섬 세 개(‘선단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가 아무것도 없는 수평선 위에 홀연히 떠 있는 풍경. 해질녘 석양에 바다가 물들기 시작할 때, 안개 없는 이른 아침이 특히 장관이다.
이 섬은 옛날부터 성어기에는 민어 어장으로 유명했고 갯벌이 넓어 굴이 많이 나기로도 유명했다. 특히 이 섬은 산마루까지 토질이 모래로 되어 있을 정도로 주위의 갯벌이 희고 가는 모래로 되어 있으나 식수가 부족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근래에는 많은 주민들이 이웃 섬이나 인천 시민들의 반대로 취소되기도 한 섬이다.
● 섬생활
이 섬은 사질로 구성되어 있고 농경지가 전혀 없어 처음 이곳에 정착해 온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척박한 땅을 일구고 야산을 개간하여 채소, 땅콩 등을 재배하는 등 생활의 근거지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하여 이 섬을 '굴업'이라 했다 하기도 하고,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굴업'라 했다고 하기도 한다.
굴업도로 가려면 우선 덕적도를 경유해야 한다. 동인천역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우리고속의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쯤 달려 덕적도 진리항에 내린 뒤, 다시 굴업도로 들어가는 작은 통통배로 바꿔 타면 된다. 덕적도는 굴업도를 비롯한 백아도, 울도 등의 인근 섬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낚시를 하러 올 만큼 제법 알려진 규모 있는 섬으로, 낚시꾼과 여행객의 발길이 사계절 끊이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선착장 입구에서 꽃게, 우럭, 아귀 등을 파느라 관광객들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섬 아낙들의 뭉근한 입담을 엿듣다 보면, 오래지 않아 이내 굴업도행 배에 오를 수 있다. 낚시 철이나 바캉스 시즌이 아니라면 한 시간도 못 돼 굴업도로 직행해 들어갈 수 있지만, 승객이 많은 날이라거나 섬마다 전해져야 할 우편물이나 생필품 등이 많은 경우에는 완행열차처럼 인근 섬들을 하나하나 방문하기 때문에 시간이 두 배로 걸린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굳이 예약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한적한 편이지만, 출발하기 전 미리 민박집을 예약한다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방 청소가 끝날 때까지 마당을 서성이는 일 따위도 없을뿐더러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을 만날 경우 ‘픽업 서비스’까지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선착장으로부터 민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락까지는, 길도 하나뿐인 데다가 걸어서 십분 정도면 다다를 만큼의 거리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경운기나 작은 화물트럭에 앉아 마을로 접어드는 기분이란, 동남아 특급 리조트의 픽업 서비스 부럽지 않다. 물론 예약자들만누릴 수 있는 호사다. 게다가 현지에서 채취한 산나물, 냉이와 해산물로 끓여낸 된장찌개,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과 생선구이 등 조미료 없이 맛을 낸 굴업도 민박집표 무공해 점심밥상이 모락모락 김 내면서 골목 어귀로 들어서는 허기진 당신을 마중할 것이다.
굴업도에는 음식점이나 생필품을 갖춰놓은 소매점이 전혀 없다. 식당 간판이 하나 목격되긴 하지만 실상은 식당 간판을 걸어놓은 민박집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기 때문에 음료나 간식거리, 먹을 것, 술이나 담배, 모기약 등의 기호품과 생필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민박집의 냉장고를 얻어 쓸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챙겨가기만 하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오히려 관광지 특유의 바가지요금, 즉흥적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시의 일상’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민박집 주인장의 브리핑을 들은 뒤 탐험을 떠나듯 물 한 병 손에 들고 꼬불꼬불 이어진 낮은 산길을 넘을 때의 설렘, 염소 똥 같은 둥근 모래 알갱이를 백사장 가득 만들어내는 조그만 게를 어린아이라도 된 듯 쫓아다니며 떨었던 주책, 넓게 펼쳐진 또 하나의 해변 뻘에서 고동과 소라 캐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목격한 석양의 근사함, 종일 마을을 돌아다녀도 마을 사람 한둘 마주치는 것이 전부일 만큼 인적 드문 마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 굴업도를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이런 소박한 기억과 느낌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향하던 통통배가 다도해의 모든 섬을 다 경유할 듯 이런저런 섬에 배를 갖다 댔을 때, 그제서야 굴업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를 상대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저 ‘좋구나’, ‘깨끗하구나’, ‘조용하구나’, ‘멋지구나’ 정도로 요약됐던 감상이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단 얘기다. 알려지지 않은 대부분의 섬들은 발을 디디지 못할 기암들과 깎아지른 절벽, 정돈되지 않은 해안가, 낙석들이 떨어져 내린 모래사장 등 흡사 무인도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굴업도는 신들의 치밀한 계획 하에 완공된 비밀 아지트와도 같은 섬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근사한 섬이지만, 그래서 더욱 알리지 않고 혼자만의 섬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부디 그 섬에 가신다면, 흔적을 남기지 말고 그대로 스며들었다 조용히 빠져나오시길. 마치 아니 다녀온 것처럼 그렇게.
굴업도(척박한 땅을 일구는 일이 하도 힘이 들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하는'이란 뜻으로 굴업(掘業)이라 부른다고도 하고,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굴업도'라 했다고 하기도 한다.
● 섬의 역사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었던 웅진지구는 '피의 옹진'이라고 불리울 만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후퇴하고 철수하였다. 사곳항에는 옹진반도에서 철수해 온 병력과 민간인들이 뒤엉키어 있었으나 우리 국군의 철수 작전에 따라 다시 인천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 중공군의 개입에 대규모 정규전은 없었으나 옹진 청년 학생들은 6.25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옹진의 자유를 위하여 대공토쟁을 해 나갔는데 그들이 바로 역사에 남을 웅진하도 유격대원들인 것이다. 1951년 1.4후퇴시에는 임시군청을 인천에 소재한 부천군청에 설치하여 20여개 도서의 난민구호 행정을 실시하였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성립 후 휴전선이 생김에 따라 백령도를 비롯한 대청도, 연평도, 소연평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미수복지구가 되었으며 1962년 6월 14일백령면 대청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7월 행정구역의 대대적인 작업으로 부천군에 속해 있던 영종, 북도, 용유, 덕적, 영홍, 대부면이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이는 부천시가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라 서해 도서에 대한 행정이 곤란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백령면과 송림면뿐인 옹진군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인천연해 도서지역을 합하여 관할하게 한 것이다. 1974년 대청 출장소가 대청면, 1983년에 영흥면에 속해있던 자월 출장소를 자월면으로 승격하여 옹진군은 10개면, 3개 출장소, 124개 서해 도서로 팽창하였다.
1975년에는 인천 신홍동에 종합청사를 신축하여 오늘날 옹진 행정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1989년 1월에 영종면과 용유면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고, 1994년 12월 22일 대통령령 제 14434호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대부면이 안산시로 편입 (94.12.26)되었으며 옹진군의 영역은 7개면, 2개장소로 줄어들었다. 또한 법률 제 4802호(94.12.22)에 의하여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로 다시 편입된 옹진군은 그 지역 특성상 수도권의 해상방위 및 경인지역의 수산물 공급처, 해상관광의 휴식공간, 그리고 서해안 개발의 요충지로 앞으로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섬의 특징
덕적면 굴업리를 이루고 있는 이 섬은 덕적도 서남도 13km거리에 있으며 인천항과는 82km가 떨어져 있다. ‘굴업도’는 원래 ‘대굴업’과 ‘소굴업’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섬이었다. 바닷물이 빠지고 드는 시간에 따라 합쳐졌다가 나뉘기를 반복하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높게 쌓인 모래톱이 두 섬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형성되면서 지금처럼 하나의 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반달 모양으로, 낮은 산자락이 해변가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상과 같다. 깨끗한 모래와 나지막한 검은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연출하는 해변가의 풍경은 평화롭다 못해 고요하다. 섬에는 모두 세 곳의 해수욕장이 있지만 모래의 상태, 규모 면에서 마을 쪽에 위치한 해변이 해수욕을 즐기기엔 가장 적합한 편. 개망초나 엉겅퀴 같은 야생초, 이름을 알 수 없는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인 산세도 빼어나다. 그림 같은 해안선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풍경도 대단하지만, 굴업도는 사슴과 흑염소를 야생공원처럼 풀어놓고 방목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 덕분에 섬을 찾는 관광객도 제법 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풍경은 대굴업도 정상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다보이는 먼 바다 위의 바위섬이다. 포크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 뾰족한 바위섬 세 개(‘선단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가 아무것도 없는 수평선 위에 홀연히 떠 있는 풍경. 해질녘 석양에 바다가 물들기 시작할 때, 안개 없는 이른 아침이 특히 장관이다.
이 섬은 옛날부터 성어기에는 민어 어장으로 유명했고 갯벌이 넓어 굴이 많이 나기로도 유명했다. 특히 이 섬은 산마루까지 토질이 모래로 되어 있을 정도로 주위의 갯벌이 희고 가는 모래로 되어 있으나 식수가 부족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근래에는 많은 주민들이 이웃 섬이나 인천 시민들의 반대로 취소되기도 한 섬이다.
● 섬생활
이 섬은 사질로 구성되어 있고 농경지가 전혀 없어 처음 이곳에 정착해 온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척박한 땅을 일구고 야산을 개간하여 채소, 땅콩 등을 재배하는 등 생활의 근거지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하여 이 섬을 '굴업'이라 했다 하기도 하고,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굴업'라 했다고 하기도 한다.
● 여행가이드
굴업도로 가려면 우선 덕적도를 경유해야 한다. 동인천역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우리고속의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쯤 달려 덕적도 진리항에 내린 뒤, 다시 굴업도로 들어가는 작은 통통배로 바꿔 타면 된다. 덕적도는 굴업도를 비롯한 백아도, 울도 등의 인근 섬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낚시를 하러 올 만큼 제법 알려진 규모 있는 섬으로, 낚시꾼과 여행객의 발길이 사계절 끊이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선착장 입구에서 꽃게, 우럭, 아귀 등을 파느라 관광객들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섬 아낙들의 뭉근한 입담을 엿듣다 보면, 오래지 않아 이내 굴업도행 배에 오를 수 있다. 낚시 철이나 바캉스 시즌이 아니라면 한 시간도 못 돼 굴업도로 직행해 들어갈 수 있지만, 승객이 많은 날이라거나 섬마다 전해져야 할 우편물이나 생필품 등이 많은 경우에는 완행열차처럼 인근 섬들을 하나하나 방문하기 때문에 시간이 두 배로 걸린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굳이 예약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한적한 편이지만, 출발하기 전 미리 민박집을 예약한다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방 청소가 끝날 때까지 마당을 서성이는 일 따위도 없을뿐더러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을 만날 경우 ‘픽업 서비스’까지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선착장으로부터 민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락까지는, 길도 하나뿐인 데다가 걸어서 십분 정도면 다다를 만큼의 거리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경운기나 작은 화물트럭에 앉아 마을로 접어드는 기분이란, 동남아 특급 리조트의 픽업 서비스 부럽지 않다. 물론 예약자들만누릴 수 있는 호사다. 게다가 현지에서 채취한 산나물, 냉이와 해산물로 끓여낸 된장찌개,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과 생선구이 등 조미료 없이 맛을 낸 굴업도 민박집표 무공해 점심밥상이 모락모락 김 내면서 골목 어귀로 들어서는 허기진 당신을 마중할 것이다.
굴업도에는 음식점이나 생필품을 갖춰놓은 소매점이 전혀 없다. 식당 간판이 하나 목격되긴 하지만 실상은 식당 간판을 걸어놓은 민박집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기 때문에 음료나 간식거리, 먹을 것, 술이나 담배, 모기약 등의 기호품과 생필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민박집의 냉장고를 얻어 쓸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챙겨가기만 하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오히려 관광지 특유의 바가지요금, 즉흥적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시의 일상’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민박집 주인장의 브리핑을 들은 뒤 탐험을 떠나듯 물 한 병 손에 들고 꼬불꼬불 이어진 낮은 산길을 넘을 때의 설렘, 염소 똥 같은 둥근 모래 알갱이를 백사장 가득 만들어내는 조그만 게를 어린아이라도 된 듯 쫓아다니며 떨었던 주책, 넓게 펼쳐진 또 하나의 해변 뻘에서 고동과 소라 캐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목격한 석양의 근사함, 종일 마을을 돌아다녀도 마을 사람 한둘 마주치는 것이 전부일 만큼 인적 드문 마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 굴업도를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이런 소박한 기억과 느낌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향하던 통통배가 다도해의 모든 섬을 다 경유할 듯 이런저런 섬에 배를 갖다 댔을 때, 그제서야 굴업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를 상대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저 ‘좋구나’, ‘깨끗하구나’, ‘조용하구나’, ‘멋지구나’ 정도로 요약됐던 감상이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단 얘기다. 알려지지 않은 대부분의 섬들은 발을 디디지 못할 기암들과 깎아지른 절벽, 정돈되지 않은 해안가, 낙석들이 떨어져 내린 모래사장 등 흡사 무인도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굴업도는 신들의 치밀한 계획 하에 완공된 비밀 아지트와도 같은 섬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근사한 섬이지만, 그래서 더욱 알리지 않고 혼자만의 섬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부디 그 섬에 가신다면, 흔적을 남기지 말고 그대로 스며들었다 조용히 빠져나오시길. 마치 아니 다녀온 것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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